명산 산행기

100대명산 통영의 미륵산

소보님 2018. 1. 26. 22:43






통영의 미륵산(2012-11-20)
 
통영에 가면 꼭 먹는거....
또 그거랑 짝꿍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약간의 부작용으로....기억이 가물가물....
자고났는데도 상태가 영 불량하다....그래서 늦은 아침을 먹고...
이대로 서울로 갈수는 없지 않겠는냐 하며 간곳은 ....
일출 찍으러 한번 산행으로 한번....두번 올랐던 미륵산....
15분만에 8부능선까지....
산행실력이 좋아서가 아니고 돈의 힘으로 ....



자세히 보면 오밀조밀 섬들마다 마을이 있는데 그들이 주로 어업을 하고 있으니
통영엔 물고기가 많은 것은 당연....







통영 시내







 
 
케이블카에서 20여분 올라가면 정상이다.









통영시가지를 바라보며 .......
 
통영은 남해안의 중심지로서, 백두영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으로 흘러 지리산 동남쪽 통영반도에서 용틀임을 멈춰 바다속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과 보석같은 52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세가 남쪽으로 향하고 있어 볕바르고 그윽할 뿐만 아니라 산줄기가 서로 싸안고 도는 것이
정다워서 아름답습니다.
기후가 온난하고 강수량이 적당한데다 한류와 난류가 통영앞바다 청정해역에서 만나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이곳을 한국수산자원의 보고라 일컫습니다.
 현재 이곳 통영에는 238Km2 넓이(바다면적2,267Km2:서울의 4배)에 14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수산업과 더불어 세계 100대 조선소중 5개가 위치하여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으며, 해양관광레저의 중심도시로 도약을 준비하고있습니다.
빼어난 풍광,온화한 기후,풍부한 수산자원을 부여받은 통영은 하늘의 각별한 배려를 받은 축복의 땅으로 UN에서도 지속발전 가능한 교육도시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산대첩, 통영상륙작전과 같은 구국과 승전의 고장으로 우리가 고단한 삶속에 휴식을 취하고 살아가기에 가장 흡족한 삶의 터전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안내문에서....)








2008년 3월 1일 통영시는 이 산에 《통영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륵산(彌勒山)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에 있는 해발 461m의 산이다.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으로 선정되었다.











통영은 26여년간 집필한 토지작가 박경리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단편  계산, 흑흑백백을 시작으로 전도, 불신시대, 벅지 등과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 시장과 전장,
파시 등 그밖의 여러 작품들이 있고, 시집은  "못 떠나는 배" 가 있다.
현대문학 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문인으로서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번 올려 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8년 5월 5일 별세하였다.
아래 사진속에 안내문이 있어서 간추려 적었고.....
 바라보이는 곳에 박경리선생의 묘소가 있다.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개시한 북한공산군은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8월 중순에는 포항,대구,마산,방면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최종목표인 부산을 향해 총공격을 시도하였다.
우리 국군은 미국을 위시한 유엔16개국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항전을 시도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때, 마산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던 북한군은 아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거제도를 통해 마산,진해,부산방면으로 진출을 기도하였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8월15일 7사단 예하 증강된 1개 대대(650명)를 투입하여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던 통영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고, 아군 경찰병력의 소규모 저항을 무력화 시킨뒤 8월 17일 01:00에 통영시가지를 완전 점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8월16일 해군참모총장은 마산 진동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해병대 김성은 부대로 하여금 거제도에 상륙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좌절시키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김성은 부대장은 현지상황을 파악한 후 거제도 대신 통영으로 직접 상륙하여 적을 격멸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 해군본부의 승인을 얻어 8월17일 해군함정의 지원을 받아 통영 동북단 장평리에 기습 상륙하였다. 상륙과 동시 삼봉산(246고지)을 점령한 김성은 부대는 8월 18일 새벽 총공격을 개시하여 전술적 요충지인 원문고개와 망일봉(148고지)을 점령하고, 이어서 해군 함포사격과 공군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8월19일 새벽에는 여황산(178고지)을 점령한 후 동일 10:00시경 통영시가지를 완전 탈환하였다.
통영시내가 탈환되자 북한군 패잔병 200여명은 야음을 틈타 어선을 탈취하여 고성방면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한 달동안 북한군은 9차례에 걸쳐 원문고개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격퇴 당했으며, 마침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적은 완전히 패주하게 되었다.
 통영상륙작전을 통해 한국해병대는 적 사살469명, 포로 83명이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 전사자는 19명에 불과하였다.
 이 작전은 6:25전쟁 중 최초로 실시된 한국군 단독의 상륙작전이자 공격작전으로 외신 종군기자로부터 "귀신잡는 해병대(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 란 찬사를 받아 한국해병대의 용맹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산대첩과 더불어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던 조국을 구한 또 하나의 승전의 역사로 후세에 길이남을 것이다.   (미륵산을 오르며 안내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