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내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산이 금오산(471m)이고 그 남쪽에 솟은 산이 고위산(495m)인데, 남산이란 이 두개의 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와 40여 개의 계곡을 통틀어서 말한다. 남북으로 뻗은 남산의 산줄기는 약 8km, 폭은 4km. 면적 안에 불상 80여 체, 탑 60여 기, 절터 110여 개소가 있어 남산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유물유적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의 진면목을 보려면 역시 남산을 찾아 골짜기 구석구석에 있는 유물과 유적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
남산을 비롯한 경주는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뛰어나 '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 Historic Areas)'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산 행 코 스 :대남면 틈수골 - 천룡사지3층석탑-고위봉-백운재-봉화대-봉화대--칠불암-봉화대능선-이영재-대연화좌대-금오봉-상사바위-상선암과 마애불상-석불좌상-선각여래좌상-선각육존불-마애관음보살상-석조여래좌상-삼릉-서남산주차장
산 행 거 리 : 약 9.5Km (산행시간 5시간) (2010-12-2)
산행시작후 30여분을 숨가쁘게 오르니 좀 과장해서 산속에 평야가 있다.
천룡사지와 천룡사 3층석탑이 있다...터만 있는 천룡사지는 절의 크기를 말해주는듯 평야같다.
천룡사지 삼층석탑
삼국유사에 남산 남쪽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고위산이라 하고, 산 남쪽의 절을 고사또는 천룡사라 기록하고 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결과 7개소의 건물터를 확인하였다.
이 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3층의 몸체돌을 형성한 일반형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 원래 천룡사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90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조사단이 탑 주변을 발굴조사하여 단층기단의 3층탑임을 확인하고 1991년 기단의 일부와 꼭대기 부분의 머리장식 대부분이 없어진 것을 보충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축조수법으로 보아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면, 탑의 높
이는 6.75m 이다. -안내문 발췌-
천룡사지에서 10여분을 오르니 자그마한 대웅전이 있는데 입구엔 천룡사라고 쓰여있다
천룡사지를 지나 잠시 오르니 좀전에 지나온 천룡사지가 보인다.
천룡사는 고사라고도 하였는데, 고위산을 뒤로 하고 해발 300m나 되는 산중의 평지(약6만평)에 조성되었다. 이 절의 창건에 대한 문헌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671년에 당나라 예부시랑 악봉구가 사신으로 와서 천룡사를 보고 "이 절이 허물어지면 신라가 망할 것이다." 라고 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볼 때 늦어도 7세기 후반 이전에 이 사찰이 존재하였던 것을 알수 있다. 그 후 천룡사는 고려시대 정종때(1040)최제안에 의하여 대규모로 중수되었고, 조선시대 말기까지 법등이 이어졌던 호국의 대가람이었다.1996년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금당지를 발굴조사하여 세번이나 중수되었던 사실을 밝혀 내었다. 지금까지 절터에 남아있는 것은 3층석탑 .귀부. 석조.부도.맷돌 등이다. -안내문 발췌-
완젼 동양화다....
해발 494m 아마 국립공원중 가장 낮은 산일것 같다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서'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들 드러내고 있다.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깊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발췌-
좀전에 지나온 봉화대
오른쪽으로 가끔씩 보여지는 동양화를 감상하며....낮선이들의 걸음에 맞추려 힘들이지 않고,
산길에 뽀송뽀송 푹푹 들어가는 모래길을 걸으니 왠 호강인가 싶다.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 데 수리는 높은 곳을 의미하며 남산에는 세곳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 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 불렀다.
선덕여왕시절 생의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위에 안치 해 주시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곳에 가 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 놓은 곳이 있었다. 생의스님은 땅을 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 경덕왕 때 향가, 안민가와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스님이 해마다 삼월 삼일,구월구일에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는데 바로 그 부처님으로 짐작된다.
지금 미륵불은 없어지고 지름2m의 연화대좌만이 남아 있으며, 진입도로 아래쪽에 절터가 남아 있는데 그 곳이 생의사터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력은 절터 옆에 서있는 비석에 있으련만 이제 비석은 사라지고 비석 받침만이 역사의 궁금증을 더해 주고 있다. -안내문 발췌-
칠불암 지날즈음부터 한두방울 떨어지던 비가 기어코 우비를 꺼내게 한다.
오후늦게 오미리쯤 온다던 비님이다...이런땐 예보가 잘도 맞는다.
남산과 망산의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새벌'이라 했으면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 한 남신이였고, 또 한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 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 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랏다.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겁에 질려 "산 봐라!" 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 라고 해야 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 신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이 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참고문헌 : 경주시지]
비가오니 완전 동양화다.
비 맞으니 모자가 자꾸 처진다.
아래로 상선암을 보며....이제 한산임을 알게 된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이 불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릳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로 삼았는데 깎아내다가 그만둔 듯 거칠다. 높이 7m로 냉골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고남산의 북봉인 금오봉을 향하여 앉아있다.이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민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가보좌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아주 특이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상선암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이 불상의 상호는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뺨가 코, 입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께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앏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잇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과 당초문등으로 보아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연화좌는 상대에 앙련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안상을 두었으나,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겨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만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을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회원님이 후레시 터트려 찍은 사진
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 부른다.
이 계곡에는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으며, 금오봉 정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특히 이 부처님은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불상은 손과 머리가 파손되었으나 몸체가 풍만하고 옷주름이 유려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된다.
왼쪽 산등성이 바위 벼랑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 있고, 위쪽으로 오르다 보면 선각의 여섯 부처님과 마에여래 좌상, 석가여래좌상, 그리고 남산에서 좌불로는 가장 큰 상선암 마애여래좌상 등 귀중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1997년 (불기 2541년) 6월 29일
회원님이 후레쉬 터트려 찍은 사진
삼릉
경주 남산일원
남산은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과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양산 등으로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동서로 가로지른 길이가 약4Km 남북의 거리는 약 8Km에 40여 계곡이 있고 이 곳에는 수많은 불적이 산재되어 있으며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다. 신라건국 전설이 깃든 나정. 신라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 김시습이 거처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하는 용장사터 등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곳은 122여 개소의 절터. 57여 개소의 석불. 64여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있는 야회 박물관으로 불려지고 있다. 2000 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주 시내 곳곳엔 이런 왕릉들이 있습니다.
하산후 이른 저녁을 먹고 나오니 바로 앞에 왕릉이....
쬐그맣고 앙징스런 불상에서 6-7m 에 이르는 불상들
그 불상을 새긴 장인들과 그 불상을 향하여 합장하며 많은 기원을 했을 우리의 선조님들 ...
삼국을 통일한 힘이 이곳 경주의 남산에 수 많은 불상들과 무관하지 않은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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